저자는 자신을 <칼의 노래>의 이순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사내의 운명,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거짓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슬픔과 고난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사내. 그것이 저자의 모습이었다.
미국과 런던, 두 곳에 해외 연수를 갔었던 그는 중증외상환자를 시스템에 맞게 살려내는 모습을 보았다. 헬리콥터를 통해서 환자를 이송하고, ‘골든아워’안에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이뤄져서 한 생명을 살리는 모습.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이를 그대로 적용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말은 고작 해야, “여기가 미국인 줄 알아?”였다. 이상을 맛보고,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걸 이뤄내지 못하는 건, 그래서 살릴 수 있는 사람들, 예방 가능한 사망들을 눈앞에서 목격한다는 건 얼마나 큰 고통일지 굳이 저자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더 나아질 것은, 더 나아갈 곳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떠나지도 못하는 상황은 나에게 그는 마치 늪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로 죽어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는 죽지 않아도 될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법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없는 게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가 왜 부끄러워해야 했을까. 오히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아예 모르고 있었던 나 자신이 더욱 부끄러웠다. 그리고 저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저자가 아마도 느꼈을, 괴로움을 느꼈다. 그는 아무것도 못하고 무력하게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을 알게 된 기자가 한탄하는 모습을 보며 “원래 세상은 이렇다.”고 덤덤히 말하는 저자의 모습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한국의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32.6%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 넓은 미국에서도 85%정도의 환자가 골든아워 안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반해 10배는 넘게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1시간은 커녕, 몇 시간 동안 앰뷸런스를 타고 온 병원을 전전하면서 결국 치료조차 못해보고 숨이 끊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중증외상환자가 우리나라 사망의 3위를 차지하는 데도 이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이는 확연하게 우리나라의 현재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을 접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이, 재정적인 지원과 헬리콥터를 통한 신속한 이송, 그리고 인력 보충이었다. 재정적인 면에서 그의 팀은 제대로 된 비행복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연락에 필요한 무전기조차 사비를 들여 마련해야 했다. 병원 측에서는 늘 중증외상센터를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지원은커녕 없애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온갖 압박을 해왔다. 그렇기에 재정적인 지원은 정부 차원에서라도 이뤄져야 했는데, 정부 부처에서의 공감, 그리고 이에 따른 정책으로까지 이어져야 했으나, 늘 저자가 제시했던 보고서와 문서들은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았으며, 설령 진행되다가도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또, 헬리콥터를 통한 이송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의료용 헬리콥터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방용 헬기를 타고 다니며 환자들을 위태롭게 살리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졌으나, 헬기 소리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고, 이에 따른 상부에서의 압박과 비난, 제대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판에 저자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또한, 인력 보충이 안 되고 있었다. 외과의 경우 원래부터 힘들기 때문에 지원률이 낮았으나, 특히 외상외과 쪽에는 지원자가 없었다. 낮은 게 아니라, 없었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나름대로 씁쓸했다. 의과 대학을 가고, 전공분야를 선택할 때에 외과, 특히 외상외과에서 일하지 않으려 하는 그 모든 의과생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처음에는 의사가 되었으면 힘들더라도 외과에 가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과에서는 우리나라의 엘리트라고 불릴 정도의 학생들이 의과대학에 진학한다. 전국 고등학교의 전교 1-2등을 차지하려 정말 처절하게 노력하고, 1등급을 받으려 아둥바둥하며 그렇게 해서 진학한 대학에 예과 2년, 본과 4년을 거치면서도 엄청난 공부량에 시달리며 이제 고소득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전문직으로서의 밝은 미래를 그리려는 학생들에게 3D 직종이나 다를 바 없는 외상외과를 선택하라고 하면, 과연 그 누가 선택하겠는가. 나는 이 대목에서 전국에서 공부를 잘한다고들 말하는 엘리트들이 의과대학에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꼭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해서 가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또 의과대학에서의 엄청난 공부량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가진 학생이 가야 한다. 하지만 그냥 떠밀리듯이 전문직이니까, 고소득이니까,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하면서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작 사람 목숨이 달린 학과에는 지원율이 작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공부 잘 하는 친구들 중에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왜 의사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그럴만한 답을 하지 못한다. 성적이 되고, 남들이 다 가니까 그냥 간다. 이것만이 나에게 돌아온 답이었다. 사실 당장 나에게도 물어본다면 어릴 때부터 간절했던 꿈도 아니었고, 제대로 뭘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의대에 진학할지 말지 고민할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진학한 학생들이 의사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을 살리고 싶고, 의사로서 자신의 인생을 내던지면서까지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이런 각오가 되어 있는 학생을 대학에서 받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그래도 사람 살리는 일과 관련된 학과에 학생들이 더 지원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안다. IMF 이후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졌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안정적인 직장, 전문적인 직장을 원하게 되었다. 그러기에는 공무원이나 의사가 적합했고, 그렇기에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는 것이다. 공무원도 물론 뜻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둘째치더라도, 의사는 적어도 사람을 살리는 것과 관련 있는 직업인 의사는 돈을 중점으로 칭송하기 보다는 그 직업 자체가 가지는 가치, 사람을 살린다는 것에서 오는 가치로 그 직업을 칭송해야 하고, 이렇게 형성된 분위기 속에서 그 직업을 선택하는 진정한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외상외과의사로서 더 많은 생명을 건져냈지만,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것에 허무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한 사람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더 연장시키기 위해서 그 허무한 길을 버티고 있다. 이유 없는 많은 비난과 압박이 쏟아져 내려도 그는 버티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응원하지는 못할 망정, 온갖 욕을 퍼붓고, 추측성 여론을 형성하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이 모든 것이 교수님께 전해졌다는 것도 화가 났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환자들이 눈에 밟혀서, 자신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최악의 몸 상태로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부러진 어깨로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고, 과로로 쓰러지기도 하면서도 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해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가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면,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다면 진작 그만두지 않았을까. 오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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