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한 곳 : 모바일 btv
매즈 미켈슨 배우의 작품을 보는 건 아마 한동안은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 더 헌트 - 한니발 - 어나더 라운드 순으로 작품을 쭉 봤는데, 각 작품에서 각각 다른 인물을 잘 살려내는 것에 감탄했다. 어떨 땐 자신의 강단대로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가, 누명을 뒤집어쓴 억울한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가, 속을 도통 알 수없는 식인 살인마가 되었다가, 이 작품에서는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의 - 어딘가 지쳐있는 직장인(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면 볼 수록 매력적인 배우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을 직접 실험해보는 중년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화면에서 술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이 드는 장면들도 제법 있을 만큼 주인공들은 러닝타임 안에서 꽤나 오랫동안 술에 취해있다.
주인공 마르틴과 친구들은 모두 학교의 교사이다. 따라서 영화에서는 덴마크의 학교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비추어지는데, 다른 나라의 학교 모습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영화와는 조금 별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수업 방식부터 시험까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달랐다.
우선 영화 초반부의 마르틴이 그냥 교과서를 읽는 걸 학생들이 그저 심드렁하게 듣는 장면은 굉장히 익숙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역사라는 과목 특성상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판서 같은 것도 없이 말로만 설명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지쳐있는 교사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업방식에 불만을 품어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단체로 모여서 교사에게 수업 방식에 대한 항의를 하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거의 교사를 에워싸듯이 빙 둘러 앉아서 청문회인 것 마냥 몰아붙이는 장면에선 내가 다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저런 태도로 저렇게 자유롭게 교사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또, 중간에 의대에 가고 싶은데 이대로면 낙제를 받을지도 모른다면서, b+이상은 받아야 의대를 가는데...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역시나 이 부분도 꽤나 기억에 남았다. 아마 한국식으로 바꿨다면 모든 문제를 다 맞춰야 하는데... 혹은 a+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로 대사가 수정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험 방식 또한 흥미로웠다. 시험때 학생을 각각 한 명씩 불러서 면접을 보듯이 시험을 치르는데, 한국에 적용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교과서와 필기를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내용을 이해하고 -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어야만 시험 때 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암기력을 기르는 공부가 아니라 사고력을 기르는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쪽지를 뽑아서 자신이 풀 문제를 고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러고보니 교사가 학생에게 평소에 술을 얼마나 마시냐고 묻는 것도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고등학생은 일단 술을 마시는게 금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 시작할 때의 호수 경기? 술 바구니를 들고 뛰며 술을 다같이 마시는 경기도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졌다. 낙제가 있다는 점도 독특했고, 무엇보다 시험을 통과해서 다같이 졸업을 축하하는 장면이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이 부분은 영화의 마지막과도 연관이 되긴 하는데, 일단 다시 영화의 내용으로 돌아가보도록 하겠다.
암튼 중년 교사들은 실험을 핑계삼아(?) 학교 근무 중에 술을 마신다(!). 한국의 학생이었기 때문일까, 아니 어떻게 학교에서 술을 마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채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것도 회의에서 걸리기는 하는데... 암튼 참 위험하면서도 독특한 발상인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은 약간의 술의 도움을 받아 제법 괜찮은 날을 보낸다. 특히 마르틴은 평소에 어딘가 조용하고 지쳐보였는데, 술을 마시고 수업을 진행하자 평소와는 달리 흥미로운 주제를 꺼내며 수업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도 제법 잘 풀리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날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게 되었고(마르틴은 집에 가려고 했으나 술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그들은 밤새 술주정을 부리며 신나게 그 순간을 만끽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다음엔 숙취에 시달리고, 친구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한껏 우울해진채 다시 서로를 만난다.
나는 술을 퍼 마시는 장면을 보면서 저 분위기 속으로 함께 뛰어들고 싶었다가도 건강도 생각하라고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저렇게 마시면 몸이 다 상할 텐데... 알코올 중독은 또 어떻고. 그래도 그런 현실적인 이유는 잠시 제쳐둔다면, 술이 가져다주는 그 특유의 몽롱함, 쾌락, 즐거운 분위기가 사람을 들뜨게 만들고 엉뚱한 행동을 하게도 만들고 어떤 이에게는 영감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게 인상적이었다.
물론 막상 중년 친구들끼리 저렇게 밤새 술 마시고, 그 다음엔 몸이 감당이 안 돼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기도 하고...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는 가족들 걱정이 불쑥 들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다들 가정적인 편은 아닌 것 같은데 학교에서 온종일 일한다고 해도 퇴근하고 나서까지 저렇게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면 가족들과는 자연히 적은 시간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그들은 순간은 자유로워보였다. 그리고 함께 다니던 친구 중 한 명의 장례식에서 그들은 친구의 관을 들어주며 슬픔을 나눈다. 이 장면 전에, 기뻐하는 학생들 사이로 소식을 전해듣고 어두워진 기색의 마르틴의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져서 그 장면에서의 감정의 대비가 한 순간에 극명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슬픔과 기쁨, 그리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술을 받아들고 마르틴이 춤을 추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은 왠지 모르게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무언가가 발산되는 듯하기도 하고, 춤인지 술에 취해 흐느적 거리는 것인지의 모를 경계에서 그동안의 감정을 풀어내는 듯한 춤사위가 참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결론적으로, '어나더라운드'라는 영화는 잔잔하지만 무언가 가슴에 무언가를 쌓아주는 영화였다. 그리고 한 두가지씩 툭툭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저렇게 청춘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다. 사실 요즘 학교라는 배경을 보면 그냥 마음이 조급해지고 질투심이 생긴다. 나의 청춘 역시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아서. 마치 모두가 인생의 밝은 면만을 내보이는 인스타를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저렇게 마음놓고 어울리며 희노애락을 나눌 기회가 앞으로 없을 것만 같아서 - 그냥 괜히 쓸쓸하고 슬펐다. 그리고 저렇게 직장에 묶여있는 직장인의 삶이라는 것도 문득 너무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데... 경제적인 자유를 이뤄 시간적인 자유 -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했다.
아무튼 리뷰글에 사담이 좀 들어가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잔잔하면서도 물에 묵직한 돌을 던지듯 잔잔한 파동이 밀려오는 영화였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문득 생각날 때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 추가로 보게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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