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침묵의 봄(레이철 카슨) 독후감 - 새들이 울지 않는 봄이 오게 된 이유

by 레옹달 2020. 1. 23.
728x90

(180917)

 

 보는 내내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마구 샘솟았던 그런 책이다.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와 공존하는 생명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해도 되는 걸까, 라는 의문부터 내가 농부라면, 당장 생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나는 이들과의 공존을 이어갈까? 라는 질문까지.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들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 우선 답부터 하자면 나는 그렇게 다른 생명들을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돌아와 결국 해가 되기도 한데, 만약 우리에게 그 영향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그들을 멸종시키거나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물론 모기와 같은 해충들일 경우에는 조금 생각해보아야 하겠는데, 그런 해충이나 익충 같은 기준도 인간이 세웠기 때문에 철저히 인간중심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생각이 아닌 가 싶다. 후자의 경우 고민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농부이고 밭에 작물을 심었는데 벌레들이 다 파먹어버리는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곤충들, 동물들을 없애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없애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유해한 약을 뿌려 그들을 박멸하는 간단한 방법이 아니라, 이 책에서도 추천하고 있듯 수컷 불임화를 시키거나 곤충을 모방한 기피제를 사용하거나 소리를 이용해서 곤충을 죽일 것이다. 전자의 질문과 후자의 질문은 제법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본다면,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살리고 가고 싶다는 것은 오히려 모순적인 말이 아닐까. 평소에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이 한때는 살아있던 생명들인데 이미 생명을 죽이는 짓을 하면서도 생명을 살리려는 태도를 가진다는 건 그닥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인간이 살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은 해야할 것 같다. 곤충이 인간이 먹을 수 있을만한 것들을 다 먹어버린다면 오히려 인간이라는 종이 죽을 테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우선은 '침묵의 봄'이라는 책의 제목에 대한 것이다. 침묵의 봄. 보는 관점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단어라 흥미롭다. 농약으로 인해 죽어버린 새들이 울지 않는 봄이라는 뜻도 될 것 같고, 진실을 알지만 침묵하는 이들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고, 카슨이 이 책을 발매한 후에 엄청난 논란과 비판에 휩싸였던 것으로 보아 침묵을 했어야 했던 그런 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해석이 나오든지 간에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과학적인 사실과 그러한 문제점을 글로 풀어썼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이었다. "자연에 닥친 위험을 인식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라는 말을 보며 나는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 과학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다. 과학자가 그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단든 생각이 들었고, 나 또한 이 책의 저자인 레이첼 카슨처럼 글로써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출간이후에 굉장한 이슈를 일으켰고, 결국 저자는 자신의 뜻을 이루어냈다. 누군가의 글이 사람들의 행동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글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에 제출하기 위한 심각한 보고서도 아니고, TV 다큐도 아닌, 단지 한 권의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담아 사람들의 변화를 이끈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728x90
반응형

댓글


<meta name="NaverBot" content="All"/>
<meta name="NaverBot" content="index,follow"/>
<meta name="Yeti" content="All"/>
<meta name="Yeti"content="index,follow"/>